ALADI(라틴아메리카통합기구) 인턴 후기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서민교

I. ALADI 인턴 지원

저는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 소재한 라틴아메리카통합기구(ALADI; Asociación Latinoamericana de Integración)에서 2013년 9월부터 2014년 2월까지 6개월 동안 근무했습니다. 제가 이 기구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었던 계기는 외교부 중남미국에서 몇 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중남미 지역기구 인턴 파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외교부 중남미국에서는 매 반기마다 중남미와 관련된 국제기구에 관련 전공을 가진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선발하여 파견하는데, 저는 전역 후 2011년 9월에 친구를 통해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그 이후로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2년 동안 자격 요건을 갖춘 뒤 지원하여 합격하였습니다. 프로그램 공지는 매년 6월과 12월에 외교부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올라옵니다.
외교부 중남미 지역기구 인턴 파견 프로그램 지원 대상은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영어와 스페인어로 업무 처리가 가능한 대학원생 및 학부 3학년 이상이며 지원하는 기구에 따라 선호되는 전공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인원에 대해 2차 필답시험 및 면접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2차 시험과 면접을 통과한 인원은 각 지원 기구에 추천되고, 각 기구에서 추천 대상자를 인턴으로 선발하겠다는 소식을 외교부에 전달하면 국제기구 인턴십 합격이 확정됩니다.

II. ALADI 인턴 활동

1. ALADI 소개

1960년도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멕시코,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7개국은 중남미 최초로 관세 동맹을 통해 역내 국가 간 교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몬테비데오협정을 체결했습니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자유무역연합(ALALC; Asociación Latinoamericana de Libre Comercio)이 만들어졌습니다. 20년이 지난 1980년 8월 12일에 중남미 11개국(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멕시코,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베네수엘라)은 새로운 몬테비데오협정을 통해 ALALC를 대체할 기구를 창설하는데, 이 기구가 바로 ALADI입니다. ALADI는 설립 목적에 맞게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자유로운 가입을 허용합니다. 1999년에 쿠바를, 2012년에 파나마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였으며, 현재 니카라과가 가입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ALADI의 목표는 역내 국가들의 균형 잡힌 사회·경제적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공동 시장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역내 특혜관세가 이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모든 회원국에게 적용되는 역내 포괄 협정뿐만 아니라 회원국 간의 자유로운 양자·다자 간 협정 또한 허용함으로써 각 회원국이 국내 사정을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경제 통합 속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 협정 내용은 관세 인하를 통한 교역 증진, 금융·조세·관세·보건 협력, 환경 보전, 과학·기술 협력, 관광 진흥 등 다양한 범위를 포괄합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회원국들 간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 볼리비아, 에콰도르, 파라과이를 상대적경제저개발국가(PMDER; países de menor desarrollo económico relativo)로 지정하여 역내에서도 관세 특혜를 준다는 점입니다. 니카라과의 가입 절차가 끝나면 니카라과 또한 이 국가군에 포함되어 관세 혜택을 누릴 예정입니다.
ALADI의 기구 규모는 100명 이내로 크지 않은 편입니다. 직원 및 인턴 구성은 대부분 우루과이 출신이지만 국제기구인 만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볼리비아, 에콰도르, 멕시코, 콜롬비아 등 다양한 국적의 인원이 있으며, 될 수 있으면 비 우루과이 출신을 뽑아서 출신 국가의 다양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근무 환경은 자율적이고 여유로운 편입니다. 한 사무실을 보통 한 명이 사용하는데, 경우에 따라 두 명 내지 세 명이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가 근무 시간이며, 12월 말, 1월과 2월 두 달 여 기간 동안은 하계 일과가 적용되어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로 단축 운영됩니다.

2. Observatorio América Latina – Asia Pacífico 소개

저는 ALADI 내의 라틴아메리카-아시아태평양 관측소(Observatorio América Latina – Asia
Pacífico; 이하 옵세르바토리오)에서 근무했습니다. 옵세르바토리오의 주요 목표는 사이버상에서 라틴아메리카 지역 19개국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 18개국 사이의 통상 및 교역과 관련된 제반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기구는 UN 산하 중남미경제위원회(CEPAL; Comisión Económico Para América Latina y el Caribe), 안데안개발공사(CAF; Corporación Andina de Fomento), 그리고 ALADI의 협력으로 2012년에 결성되었습니다. 따라서 ALADI와 관련은 있지만 ALADI의 부서는 아닌, ALADI에서 어느 정도 독립성을 가진 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ALADI 내에서 옵세르바토리오는 협력교육부(DCF; Departamento de Cooperación y Formación)에 편제되어 있으며, 외교부를 통해 파견된 인턴은 옵세르바토리오 상사들뿐만 아니라 협력교육부장 Diego Fernández의 관리·감독하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 19개국 아시아 태평양 지역 18개국
 아르헨티나
 볼리비아
 브라질
 칠레
 콜롬비아
 코스타리카
 호주
 브루나이
 캄보디아
 중국
 대한민국
 필리핀

 쿠바
 에콰도르
 엘살바도르
 과테말라
 온두라스
 멕시코
 니카라과
 파나마
 파라과이
 페루
 도미니카공화국
 우루과이
 베네수엘라
 인도
 인도네시아
 일본
 라오스
 말레이시아
 미얀마
 뉴질랜드
 싱가포르
 태국
 대만
 베트남
 홍콩

제가 근무할 당시 옵세르바토리오 인원은 직원 2명과 저를 포함한 인턴 2명이었습니다. 직원
은 CAF 소속 코디네이터 Ignacio Bartesaghi와 어시스턴트 Valeria Batista로, 대학교에서 국제통상 및 국제관계 교수를 겸임하는 관계로 전일 근무를 하지 않고 파트타임으로만 출근했습니다. 인턴은 외교부에서 파견되는 한국 인턴인 저 이외에 초반 한 달 동안 함께 일한 Victoria, 세 달 동안 함께한 Jimena, 인턴십 후반 한 달 동안 함께 일한 Soledad이 있습니다. 모두 국제관계를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3. 인턴 업무 소개

옵세르바토리오의 업무 대부분은 라틴아메리카 지역 국가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 사이
에서 발생하는 통상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찾아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확한 최신 자료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옵세르바토리오 홈페이지(www.observatorioasiapacifico.org)에 업로드하는 것입니다. 6개월 동안 인턴을 하면서 다양한 업무를 맡았지만, 기본적으로는 대부분 리서치 및 포털 업데이트에 해당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조금 다른 성격의 업무로는 포털 관리나 출판 보조 등이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 또한 양 지역 간의 정보 제공이라는 일관된 목표로 포괄됩니다.
옵세르바토리오에서 제가 맡은 주요 업무는 37개국의 대통령실, 외교부, 경제 부처, 관세청,
대학교, 연구 기관, 무역관 등 공식 사이트에서 최근 2주 사이에 업데이트된 기사를 수시로 모니터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아시아 태평양 국가와 라틴아메리카 국가 간의 통상이나 사업과 관련된 행사, 협정, 학회, 출판물 등에 대한 기사가 있으면 기준에 따라 기사를 분류하고 출처 및 날짜를 명기한 후 보고했습니다. 코디네이터의 승인이 있은 후 통과된 기사는 옵세르바토리오 홈페이지에 업로드했습니다. 단순한 업무이지만 200개가 넘는 사이트에 올라오는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로 된 기사들을 수시로 확인하고 관련 기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인턴의 역할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다른 업무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에 들어와 있는 라틴아메리카 19개국 국제 상공회의
소 데이터베이스를 검토하고 구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작업으로, 두 지역 37개 국가에 주재하고 있는 500개 이상의 외교 공관(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 주재 라틴아메리카 국가 대사관 및 영사관, 라틴아메리카 국가 주재 아시아 태평양 국가 대사관 및 영사관)의 책임자, 연락처, 주소, 웹사이트, 겸임국 등의 정보를 일일이 검색·검토하고 갱신해야 했습니다.
또한 아시아 태평양 국가 18개국의 주요 언론사를 조사하는 업무, 상대 지역을 연구하는 대
학 및 연구 기관 리서치, 양 지역 국가들 간에 체결된 투자·무역 협정 데이터 및 협상 혹은 논의 중인 무역 협정 데이터를 리서치하고 재검토·갱신하는 업무도 진행했습니다. 학술적인 활동으로는 책 출판 및 데이터베이스 갱신을 위한 논문 및 저서 검토가 있었습니다. 조금 색다른 작업으로는, CEPAL, CAF, ALADI가 공동으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에 바탕하
는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태평양 교역 관계: 도전과 기회(Las relaciones comerciales entre América Latina y Asia Pacífico: desafíos y oportunidades)’라는 논문집 출판을 위해 제출된 논문의 양식을 검토·수정하고 참고 문헌의 서지 정보를 재확인하는 업무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 논문 네 편을 담당했지만, 다른 인턴이 검토했던 영어 및 포르투갈어 논문 다섯 편도 담당하여 교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인턴 초반에 담당했던 이 업무는 결국 인턴 활동을 마친 2월 14일이 조금 지난 2월 19일에 ALADI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출판 발표 기념 세미나에서 빛을 봤습니다.
옵세르바토리오 포털에 내용을 탑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포털을 관리하는 작업도 맡았습니다.
홈페이지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누락된 내용이 있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능이 있는지 여러 차례 하나하나 모니터링했습니다. 또한, 포털은 스페인어, 영어, 포르투갈어 세 언어로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에 해당 언어로 기재되지 않은 상태로 탑재되어 있던 컨텐츠를 체크하고 ALADI 번역 부서의 가이드라인을 참조하여 번역하는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인턴 후반기에는 코디네이터가 월간 정기 간행물을 스페인어·영어·포르투갈어로 발행하는 프
로젝트를 구상하였는데, 간행물의 기획 및 디자인 업무가 저에게 할당되었습니다. 정기 간행물의 초안을 기획하였고, 메일링 프로그램을 통해 2014년 2월 발간 제1호의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월간 정기 간행물에는 옵세르바토리오에서 수집하는 주요 정보들이 포함됩니다. 취합되는 컨텐츠가 포털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메일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교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발송됨에 따라 옵세르바토리오에 대한 접근성이 보다 향상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곳에서의 인턴 활동은 기본적으로 무급이지만 ALADI에서 매 점심 식사에 대한 식권을 제
공하고 출근 일수에 상응하는 금액의 교통카드 충전 영수증을 가져오면 교통비 또한 후불로 지급해 주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높은 물가수준을 자랑하는 우루과이에서의 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외교부와 인턴 파견 협약을 맺은 기구 중 구내식당이 없는 곳도 있다고 들었는데, ALADI에는 저렴한 구내식당이 있고 요리사 Fernando의 음식도 가격을 떠나 훌륭한 편이라고 느껴져서 상당히 만족했습니다. 매 점심 때마다 구내식당으로 내려가 인턴들 및 젊은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며 친목을 도모했습니다. 월말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대사관에 가서 지원금을 수령하였는데, 상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출근을 미루거나 퇴근을 앞당길 때도 있었고, 대사관의 퇴근 시간이 ALADI에 비해 늦기 때문에 퇴근 후 바로 대사관을 방문할 때도 있었습니다.

III. ALADI 인턴 외 활동

1. 한국어 교습

ALADI 인턴 이외의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 있었던 활동을 하나 선택하라면 한국어
교습을 꼽을 것입니다. 2013년 상반기에 주 우루과이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한국 문화를 우루과이에 소개하기 위한 목적의 일환으로 몬테비데오에서 가장 큰 사설 어학원에서 한국어 강의가 개설될 수 있도록 힘썼다고 합니다. 해외에서 한국어 교육 경험이 있던 전임 ALADI 인턴이 5월부터 네 달 동안 수업을 맡았지만 9월 초에 인턴 활동을 끝내고 우루과이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제가 이어받아서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수업 경험은 없었지만 관심이 있는 분야였고, 다행히도 전임 인턴이 기초를 잘 가르쳐 놓았기 때문에 남은 다섯 명과 함께 수월하게 수업을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수업은 9월 초중반부터 시작해서 12월 중후반에 끝났습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퇴근 후 한 시간 반씩 수업을 하고 난 뒤 허기진 배를 쥐고 지친 채로 집에 돌아와서 취침 전에 복습 및 예습 자료를 만들고는 했지만 고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현지인들이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제 수업을 들어 준다는 사실에 항상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도 되고 수업도 미숙했지만, 항상 저에게 친절했던 학생들과 점점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홀로 지내는 타지 생활에서 마음 둘 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정시에 수업을 마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애착과 열정을 가지고 수업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ALADI 업무 때는 말을 할 일이 많이 없었지만, 수업 때는 한 시간 반 이상 화이트보드 앞에서 스페인어로 혼자 떠들어야 했기 때문에 언어적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 대사관 행사 지원

주 우루과이 대한민국 대사관의 외교관과 직원은 10명 정도로 인원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가끔 한국과 관계된 정치적이나 문화적인 행사가 있을 때는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지에 파견 나와 있는 젊은 한국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제가 있던 시기에는 이러한 행사가 딱 한 번밖에 없었는데, 바로 10월 2일에 열린 개천절 행사였습니다. 행사가 10월 3일에 개최되지 않은 이유는 그날이 독일의 통일기념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루과이 한국 및 독일 대사관에서는 기념 행사가 겹치지 않도록 매년 한 번씩 날짜를 양보한다고 합니다. 독립광장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우루과이 건국의 대부 아르티가스 장군상 아래에서 헌화식과 함께 시작된 개천절 행사는 구시가지에 위치한 유서 깊은 정치적 장소인 ‘우루과이 클럽(Club Uruguay)’에서 열렸고, 세계 각국의 수많은 외교관들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도 참석한 자리였습니다.
이번 행사를 돕기 위해 모인 한국인 인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행사장 안내, 방문객 접수 등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맡은 역할은 카메라로 행사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외교적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계약되어 활동하는 공식 사진 기사 할아버지가 계셨지만, 결과물이 훌륭한 편은 아니라고 해서 제가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다른 인턴들은 실내에서 행사 준비와 안내 및 접수를 하는 동안 저는 독립광장에서의 헌화식부터 대사님 내외를 비롯한 우리 외교관 분들의 방문객 영접, 우루과이 대통령 방문, 우루과이 국가 및 애국가 제창, 대사님의 연설과 무히카 대통령의 방명록 작성 등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적 행사의 굵직굵직한 부분 가운데 있을 수 있었습니다.

3. KBS 취재 수행통역

11월 말에 KBS 상파울루 지국에서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한 취재를 하기 위해 기자와 카메라
감독이 몬테비데오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우루과이의 한인 사회가 200명 정도로 작은 관계로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둘 다 구사하고 시간을 내서 기자를 수행하며 통역을 할 만한 인원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저는 통역을 할 만큼 스페인어 실력이 충분하지 않았고 경험도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참사관님께서 기자에게 저를 추천해 주셔서 ALADI에는 양해를 구하고 2박 3일 동안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인터뷰는 스페인어로 질문을 하고 답변은 요지만 파악해서 기자에게 간략하게 전달하는 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통역의 부담이 적었습니다.
첫날에 공항에 마중을 나가고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부터 빡빡한 일정이 시작되었습
니다. 대사관에서 미리 잡아 놓은 인터뷰 약속 시간에 맞춰 몬테비데오 이곳저곳을 이동해야 했는데, 첫 날은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시민단체 대표와 우루과이화학·의약품협회 국제협력국장과의 인터뷰 두 건이 끝나자 금새 피로해졌습니다. 이튿날 오전에는 야당 및 여당의 하원의원을 만나 마리화나 유통 합법화에 대한 대립되는 의견을 들었고, 길거리 지나는 여러 시민에게 말을 걸어 이슈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오후에는 국가약물위원회의 사무총장과 시민단체의 대표자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밤에는 지인이 살고 있는 숙소를 방문하여 우루과이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기자와 카메라 감독은 다음 취재를 위해 브라질로 돌아갔지만, 저는 방송 방영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추가적으로 부탁을 받아서 주말 내내 두 시간 분량의 인터뷰 영상을 번역했습니다.
수행통역과 녹취 번역은 육체적·정신적으로 고된 업무였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국가의 정
치적·사회적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을 직접 만나고 뜨거운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이 활동은 저에게 값진 기억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촬영된 인터뷰는 12월 7일 KBS ‘특파원 현장보고’를 통해 한국에 방송되었습니다.

4. 여행

주말 동안 당일치기나 1박 2일로 우루과이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었지만, 저는 여행을 거
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일찍 비행기를 타고 왔기 때문에 몬테비데오에 도착하기 전 며칠 동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고, 아르헨티나에서 배를 타고 우루과이로 건너와서는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꼴로니아델사끄라멘또(Colonia del Sacramento)라는 마을에서 하루 머물렀습니다. 여름의 무더위가 막 찾아온 어느 금요일에는 퇴근 후 버스와 페리를 타고 2박 3일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연말연시에는 2주 정도의 휴가를 받아서 인접 국가 브라질을 다녀왔습니다. 크리스마스 새벽
에 비행기를 타고 히우지자네이루에 가서 뜨거운 브라질의 여름을 만끽했습니다. 특히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에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세계 곳곳에서 온 200만여 명의 사람들과 흰 옷을 입고 함께한 새해맞이 행사(Réveillon)는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히우지자네이루를 충분히 구경한 다음에는 비행기를 타고 포스두이과수에 가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거대한 이과수 폭포를 온몸으로 맞으며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습니다.
휴가를 가기 전에는 ALADI 동료 및 지인들과 함께 1박 2일로 브라질 근처에 있는 까보뽈로
니오(Cabo Polonio)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까보뽈로니오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필요한 전기는 발전기를 통해 자급합니다. 최근 우루과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휴가철 방문해야 할 곳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하고, 인접국에도 우루과이의 손꼽히는 명소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곳입니다.

5. 여가생활, 친목도모 등

저는 한국에서 탱고를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에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함께 탱고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몬테비데오에서 탱고 수업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휴가 이후에는 해도 길고 퇴근도 일찍 하고 한국어 수업도 더 이상 없었기 때문에 수요일마다 탱고에 관심이 있었던 ALADI 동료 Analía와 함께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또한, 몬테비데오 한국 중소기업의 인턴 중 한 명과 함께 몇 차례 살사 수업을 들었습니다. 영화나 공연도 비싸지 않은 편이라 시내 이곳저곳의 영화관과 극장을 찾아 다닌 적도 있습니다. 1월 말에는 카니발 개막 행진이 있어서 이틀 동안 행진을 구경했고, 2월 중순에는 우루과이 카니발 행사의 꽃인 ‘샤마다(las llamadas)’를 구경하며 우루과이 흑인들의 리듬인 깐돔베(candombe)의 힘찬 북소리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학원 학생들이나 ALADI 동료들,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종종 만나서
한식을 포함한 다양한 먹거리를 즐겼고, 한국어 수업 학생 중 한 명인 Rita 할머니의 교외 집에 버스를 타고 놀러 가서 저녁에 햄버거를 만들어 먹었던 적도 있습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학생 중 한 명이었던 Fernanda가 고맙게도 저를 집에 초대해 줘서 대가족과 함께 따뜻한 분위기에서 선물도 교환하며 시끌벅적하게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12월 중순에 있었던 ALADI 송년회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새벽까지 술과 음악과 춤을 만끽하며 직장 업무를 뒤로한 채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IV. 우루과이 소개 및 몬테비데오 생활 정보

1. 우루과이 소개

우루과이는 한국의 대척점에 있는 국가로 우리나라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이지만 한
국과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단, 양 옆에 중남미에서 정치·경제·외교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위치해 있는 모습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 위치한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독립 이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제국주의적 패권 다툼에 희생당했고, 독립 과정에서도 아르헨티나 및 브라질과 갈등이 빚어졌다고 합니다. 라플라타 강을 끼고 아르헨티나와 분리되어 있지만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지점이 많아서 탱고와 마떼 차 등을 두고 ‘원조 다툼’을 하기도 합니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그러하듯이 많은 우루과이 국민들은 아르헨티나에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점도 한국과 흡사합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에게 패배를 안겨준 우루과이는 남미의 축구 강국 중 하
나입니다. 1930년 제1회 월드컵이 우루과이에서 개최되었고, 대다수 국민들이 좋아하는 클럽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정도로 우루과이의 축구 사랑은 큰 편입니다. ‘국민 재간둥이’로 사랑받는 수아레스가 광고에 출연하고 여느 식당에 가면 우루과이 축구 전문 채널이 틀어져 있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면적은 남한의 1.75배이지만 인구는 부산보다도 적은 330만 명 정도인 우루과이에서 걸출한 축구 선수들이 배출되어 주변의 강대국들과 쟁쟁하게 겨루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우루과이의 집권 정당은 좌파연합으로, 현재 10년째 집권 중입니다. 2014년 10월에 대선이 있는데, 여당의 승리가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좌파연합은 인구의 1/3 이상이 밀집해 있는 수도권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고, 이외의 지역에서는 오랜 역사를 지닌 보수당인 백당과 홍당이 우세한 편이라고 합니다. 동성애자 결혼법과 낙태법을 통과시킨 여당이 최근 마약 거래에 수반되는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추진한 마리화나 유통 합법화 법안이 통과되어 세계가 시끌시끌했는데, 상원과 하원도 여당 의원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참고로, 이전 법률하에서는 마리화나 유통 및 판매만 불법이었고 소비는 합법이었다는 점과 청년층의 1/3이 마리화나 흡연을 할 정도로 대중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루과이 또한 스페인의 식민 지배로 생겨난 국가이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쓰고 가톨릭이 주
요 종교이지만, 20세기 초부터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화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습니다. 교사는 학교에서 정치 및 종교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없다고 하고, 동방박사의 날, 성주간, 성탄절 등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스페인·포르투갈어권역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공휴일의 이름을 어린이날, 관광주간, 가족의 날로 바꾸었을 정도로 세속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무신론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우루과이는 중남미에서 사회통합지수가 가장 높을 정도로 정치가 안정되어 있고 빈부격차가 적으며 중남미에서 치안이 가장 좋은 편입니다. 또한, 백인 비율이 90%가 넘을 정도로 백인이 많은데, 스페인의 침탈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거의 다 학살당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우루과이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조금 동떨어진, 유럽에 가까운 특성을 가진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몬테비데오 생활 정보

현지인들과 외국인들이 몬테비데오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tranquilo’입니다. 몬테비데오는 우루과이의 수도이고 행정구역상의 면적도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차이가 없지만, 인턴 활동 중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잠깐 들렀을 때 저는 서울에 상경한 시골 사람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몬테비데오는 회사나 상점이 중심가에 집중되어 있고 조금 외곽에는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으며 더 멀리 나가면 푸른 벌판이 펼쳐집니다. 따라서 주로 중심가에서만 생활하는 외국인들에게 몬테비데오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중소도시로 느껴질 것입니다. 실제로 버스를 타도 웬만한 곳은 20분 이내에 도착하기 때문에 며칠만 마음 먹고 돌아다니면 도시 전체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루과이를 설명하는 다른 키워드는 물가입니다. 누구나 우루과이에 처음 오면 바로 체감하
는 것이 물가는 상당히 비싸다는 것입니다. 특히, 공산품이 비싼데, 웬만한 품목은 한국보다 질은 좋지 않지만 가격은 비슷하거나 더 비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나마 소고기와 과일 정도가 한국보다는 싸기 때문에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 종종 소고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식당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면 10% 정도 내는 팁을 포함하여 최소 만 원이 넘게 나오기 때문에 요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됩니다. 현지인들의 소득 수준도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점심으로는 도시락을 많이 싸 들고 다닙니다.
저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될 때 몬테비데오에 도착했는데, 청명한 하늘 아래 바다처럼
광활하게 펼쳐지 있는 라플라타 강을 따라 나 있는 길인 ‘람블라(Ramblas)’를 처음으로 보고 따라 걸었을 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ALADI에 출근할 때도 건물 앞으로 람블라와 강이 보여서 아침마다 가슴이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정서는 훨씬 더 여유로울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날씨가 좋은 오후나 주말이 되면 사람들은 다들 람블라와 해변(정확하게는 라플라타 강변)으로 나와서 따사로운 오후를 즐기고, 선선한 밤에도 사람들은 람블라에서 시원한 밤공기를 즐깁니다. 람블라를 따라 커다란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도 많고, 마떼 차와 보온병을 들고 다니며 마시는 사람들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되고 날이 추워지면 이렇게 여유로운 모습은 상대적으로 보기 힘들어집니다.
경쟁과 스트레스가 일상인 한국과는 다르게 이곳은 생활에 여유가 있고, 고령 인구 비율이
높아서 그런지 사람들도 소탈하고 점잖은 편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경험한 몬테비데오는 한 마디로 참 좋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으로 돌아온 전임 인턴과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아 생활을 하고 있는 전전임 인턴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 1년 전에 인턴을 했던 선배가 우루과이에 다시 들른 적이 있었는데, 몬테비데오에서 ALADI 인턴 출신 네 명이 한 자리에서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기억에 남았습니다. 인턴 활동을 하면서 저도 언젠가는 연어처럼 다시 이곳에 돌아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떠날 때가 되니 그동안 사람들과 더 친해지지 못하고 더 다양한 활동을 하지 않아서 아쉽기도 하지만 제가 이곳에 와서 별 탈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 준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