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껠의 말라가, 어느 눈부신 지중해 도시의 단편
“말라가, 너는 숨결이자 어루만짐
속삭임, 아첨, 선물
캐스터네츠 같은 단어
말라가, 말라가, 말라가
귓가에 또각이는
기타 현을 튕기는, 노래를 부르는“
-호세 로뻬스 루이스, <말라가라는 이름> 中
6월에 처음 만난 말라가는 벌써 계절이 두 번 바뀌어 겨울이다. 스페인 내륙 지방의 칼바람은 여기까지 닿기엔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이베리아 반도 거의 최남단인데다 바다만 몇 시간 건너면 아프리카가 지척인 곳이라 찬 기운이 돌더라도 매섭지 않고 그저 귀엽게 겨울 시늉뿐이다. 이국적인 첫인상을 남긴 도시의 풍경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아무데서나 고개를 들면 아랍의 성벽과 미완성 가톨릭 대성당이 한 시야 안에서 묘한 대조를 이루고 덕지덕지 들어선 누릿한 아파트들, 초록색 야자수, 청아한 지중해는 따갑도록 쏟아지는 햇살 아래 더욱 또렷이 대비된다. 사시사철 붐비는 관광객들은 말라가가 중세 요새 도시였을 적엔 바다였던 아따라사나 시장 앞거리를 지나 도시의 쇼핑 중심거리인 라리오스 길을 걷고 그라나다 거리니 운시바이 광장이니 하는 구시가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다 피카소가 어릴 적 뛰어놀던 메르세드 광장에 다다른다. 광장 근처의 터널을 지나 소금기 섞인 공기를 마시며 조금 더 가면 눈앞에 파란 지중해가 펼쳐진다. 해변에서 화창한 날씨를 마음껏 즐긴 뒤엔 맛있는 말라가 음식이 기다린다. 밤 9시부터 12시를 절정으로 하여 붐비는 바르나 레스토랑들의 음식은 웬만해선 무엇을 골라도 실패할 위험이 없다. 자정이 지나면 또 다른 말라가가 눈을 뜬다. 말라가의 낮은 밤을 위해 존재한다. 낮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수많은 디스꼬떼까(나이트 클럽)에서 잠을 잊은 말라게뇨(말라가 사람)들과 신나게 휴가를 마무리하고 나면 여행자들은 집으로 혹은 다음 여정을 향해 떠난다.
그러나 나는 남아있다. 메르세드 광장에. 휴양지로 유명한 말라가는 대학이 있는 대학도시이기도 하다. 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수많은 에라스무스(원래 에라스무스는 유럽 국가들 간 교환학생 프로그램 중 하나의 명칭이지만 남미나 아시아에서 온 아이들도 에라스무스로 흔히 불린다)들은 도시에 활기를 더한다. 나는 우리학교에서 말라가 대학으로 처음 파견된 교환학생이다. 그만큼 정보도 없었고 출국 전부터 좌충우돌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비자 신청, 학점 인정, 장학금 신청 등등의 머리 아픈 서류들과 싸워 이기고 날아온 말라가는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여름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타국에서의 삶이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일들을 겪으며 나는 안팎으로 많이 변했지만 가을이 되어도 겨울이 되어도 쏟아지는 햇살만은 여전하다. 말라가는 잠시 스쳐가는 사람은 알 수 없을 무언가로 가득한 도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 도시와 그 사람들에 대한 몇 가지 스케치다.
치니따 노이로제
말라가에 머무는 동양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 이상 들어본 말. “치나, 치니따(중국인, 중국여자)!” 치나(china)는 중국인 여성을 일컫는 스페인어로 축소사를 붙인 형태는 치니따(chinita)이다. 보통 스페인어에서 축소사는 작고 귀여운 느낌을 주려 사용되지만 무언가를 깎아내리며 얕잡아 볼 때에도 쓰인다. 한편 치니따라는 단어는 중국과 전혀 상관없이 여성을 친근하게 부를 때 쓰이기도 한다. 고로 치니따는 신기하고 만만한 동양여자에 대한 말라가 사람들의 애칭 아닌 애칭인 셈이다.
나는 평생 들을 중국인 소리를 페리아 기간에 다 듣는 줄 알았다.(페리아는 말라가의 8월 축제로 이 기간엔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퍼포먼스가 펼쳐지며 무엇보다 길거리에서 술 마시는 행위, 일명 보떼욘을 할 수 있다. 아예 메인 광장과 거리들에 맥주 천막을 설치하고 도시 전체가 술에 취해버리는 페리아 기간에 거리는 맥주 냄새와 오줌 냄새로 가득하고 거나하게 취한 무리들은 밤이 새도록 떠들썩하다.) 영국에 잠시 머물다 말라가에 날아와 집 가계약만 하고 돌아간 지 한 달 만에 나는 이민 가방에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말라가에 다시 돌아왔다. 나를 반겨준 것은 술 취해 휘청거리는 도시였다. 우리 집은 메르세드 광장에 바로 면한 마드레 데 디오스 거리에 있다. 그렇게 평화롭던 그 거리가 자정임에도 대낮처럼 밝은 불빛 아래 손에 손에 술병을 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30kg짜리 커다란 가방을 간신히 끌고 가는 동양인 여자애는 술꾼들의 이목을 끌기에 딱 좋다. 다들 나를 보면서 한마디씩 하느라 난리가 났다. 예기치 못한 주목에 당황한 와중에도 선명히 들리는 그들의 외침은 “치나, 치니따!". 적어도 그날 밤은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기분이 나쁜 줄도 몰랐다. 문제는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의 다음 날에도 밖에 나가기만 하면 술 취한 남자들이 나를 치니따라고 불러대는 것이었다. 한번은 너무 기분이 나빠서 나한테 “야, 중국여자, 이리 와봐.” 하고 외쳐대는 남자에게 “나 중국인 아니야.”라고 대꾸를 해준 적이 있다. 피식 비웃으면서 “나도 중국인 아닌데?”하고 대답하는 그 얼굴이 어찌나 얄밉던지. 그래도 페리아만 끝나면 사람들이 제정신을 찾을 테니까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큰 오산 넘버 원. 페리아 때보다는 덜하지만 10대부터 70대까지 노소를 막론하고 남자들은 왜들 그렇게 나를 중국인이라고 부르지 못해 안달이 나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 되면 더 심해진다. 딱히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술 취한 사람들로 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멀리서 신나게 떠들면서 몰려오는 남자들 무리의 눈에 띄었다가는 백 프로다. 그저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모욕적인 말을 듣거나 치마 들치기를 당하는 경우도 잦으므로 얼굴 가리고 멀어지는 것이 상책이다. 내가 겪은 최악은 친구와 함께 탄 버스 안에서 10대 세 명에게 20분이 넘도록 인종차별과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다. 그 길고 긴 시간동안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미안한 듯이 시선을 외면하기만 했다. 그때 받은 충격으로 한동안 지나가는 남자들, 특히 10대들만 봐도 나한테 해코지 할까봐 무서운 한편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화가 뻗치기도 했다. 언어폭력보다 심한 경우 침을 맞거나 오렌지를 맞은 친구들도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ㅊ비슷한 말만 해도 신경이 곤두선다. 그야말로 치니따 노이로제다.
사실 말라가에는 중국인이 많다. 말라가의 특이한 점 중 하나가 중국인 상점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보통 스페인은 슈퍼마켓 체인 몇 개가 거의 모든 시장을 차지하고 간간이 있는 구멍가게들이 슈퍼마켓이 문 닫는 날짜와 시간에도 문을 열어가며 영업하는 형태인데 말라가는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그 구멍가게들이 죄다 중국인들 소유다. 뿐만 아니라 중국 레스토랑도 심심치 않게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거리에는 가끔 보이는 일본이나 중국 단체 관광객 빼고는 동양인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들이 중국인을 외치는 이유가 그나마 중국이 친근해서 그런 건지 신기해서 그런 건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쨌거나 문제는 중국이 아니다. 스페인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사실 우리도 너희가 일본에서 왔는지 중국에서 왔는지 한국에서 왔는지 전혀 모르겠어. 그나마 중국인이 제일 수가 많으니까 다들 중국인이겠거니 하는 거지 뭐. 미안하다야. 너희가 이해해.” 이 아이들은 단순히 한국인이 중국인으로 불리니까 기분나빠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잘 모르는 외국인이 어느 동양인을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기분 나쁠 것 없다. 확률적으로도 실제로 그 사람이 중국인일 가능성이 매우 크지 않은가. 문제는 그것을 그 사람한테 소리친다는데 있다. 정말 전형적으로 생긴 스페인 여자나 독일 여자가 지나간다고 해서 “어이, 스페인, 이리 와봐.” 혹은 “어이, 독일 여자, 너 얼마냐?” 이렇게 감히 소리칠 스페인 남자들은 없다. 이렇게 다시 말해줘야 그제야 상대가 진짜로 미안해하기 시작한다. “사실 말라가가 그렇게 교육 수준이 높은 도시는 아니야. 그런 애들 말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말에두까도(못 배운 사람)들이겠거니 해. 중국인 상점 없으면 일요일에 빵도 못 사먹을 애들이 뭣도 모르고 그러는 거야.”
아무튼 여자들과 희롱하기 좋아하는 안달루시아 남자들의 기질이 동양에 대한 무지와 동양 여자에 대한 성적 호기심과 얽혀 일부 저질 남자들로 하여금 그렇게들 치나를 불러대게 한다는 것이 내 잠정 결론이다. 그런데 이렇게 스페인 식으로 여자들에게 치근덕거리지 않더라도 특정 나라 사람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우리나라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를 똑같이 존중해 주기만 하면 될 일인데. 성숙한 사회로의 이행은 전 세계 어디서나 이렇게도 멀고 험하다. 그러고 보면 과연 완전한 다문화 사회라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런던이나 뉴욕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에서도 다국적 다문화의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비교적 잘 용해되어 살아가지만, 속에서 인종, 문화 갈등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무리 짓고 자기와 다른 것을 배척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가 싶기도 하다. 영국, 폴란드, 한국 세 국적의 이해심 넘치는 여자들이 살고 있는 우리 집에서도 각자의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이 종종 생기는데 온갖 유형의 사람이 복작대는 큰 사회의 완전한 화합은 얼마나 요원한 일일지. 어디서든 특정 인종, 문화, 성별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감정이 자기도 모르게 생기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자각하고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은 더더욱 사회적 금기가 되어야 할 테고 말이다.
아직도 말라가에서 아시아 여자로 살기에는 잊을 만할 때 쯤 큰 상처받을 일이 자꾸 생긴다. 말라가에서 제일 참을 수 없는 것 단 한 가지는 분별없는 녀석들이 거리에 분포해 있을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것. 겉으로는 무시한다고 해도 속으로 상처 받는 것 까지 막을 수는 없다. 차차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모두를 위하여.
누구도 달리지 않는 도시
쾌활하고 낙천적인 말라가에서 언제까지나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을 하나 꼽아보자면 아침 출근 시간에 사람들이 지하철역까지 경주를 벌이는 매우 서울스러운 그림이다. 뭐, 지하철이 아직 건설 중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말라가에서 뭔가 급해서 달리는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들다. 그뿐인가. 점심시간인 낮 두 세 시 경부터 다섯 시 반 정도 까지 도시는 대책 없는 시에스따에 빠져든다. 이 시간에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대체로 관광객이나 집에 있자니 좀이 쑤시는 나 같은 사람들뿐이다. 심지어 슈퍼마켓도 시에스따를 자기 때문에 조금 더 비싼 중국인 상점에 가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필요한 것을 사두어야 한다. 한국이었으면 조금 노곤하긴 하겠지만 한창 활동할 시간에 스페인 기준으로 작지도 않은 동네가 일시정지 되어버리니 서울에서 온 나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수업 자료를 급히 인쇄해가고 싶어도 내 단골 복사집 삼촌은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밥 먹고 한숨 자러 헬멧 챙겨 쓰고 오토바이 타고 후퇴한 상태이니 필기하는 손만 죽어난다. 한번은 스페인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니, 장사는 안 해? 도대체 뭐 먹고 사는 거야?”
“말라가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래. 40도를 넘나드는데 일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
“그래, 근데 그 때는 여름이었잖아. 지금은 겨울이라 덥지도 않은데 낮잠은 왜 아직도 챙겨 자는 거야?”
“그래도 시에스따는 자야 돼.”
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러나 안달루시아식의 느린 삶에 익숙해지기란 생각보다 쉽다. 조급한 마음만 버리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금세 알게 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나 밝다. 낯선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금세 친근하게 대화를 나눈다. 내가 놀란 것은 치니따를 외치는 질 나쁜 무리들이 있는 한편 전혀 내가 외국인임을 의식 못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말라가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가 “니냐(얘야), OOO 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니?”하면서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 놔두고 갑자기 내게 길을 묻기도 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태평양 오지랖으로 대화에 끼어들기도 한다. 좋은 날씨와 여유로운 삶이 이들의 활달한 기질을 이루었을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이 격의 없는 사람들은 삶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고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사실 말라가를 포함한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역의 실업률은 30%에 육박한다. 4% 이하인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엄청난 차이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 상당수가 실업자라는 소리다. 내가 수강하는 과목 중 도시경제정책이라는 강의가 있는데 스페인 도시별, 지역별 경제 수치를 비교해 배울 때면 안달루시아 지역은 어김없이 최 하위권에 위치하고 있었다. 특히 주택 문제가 심각한데 공급 부족 보다는 불경기로 인한 수요 부족이 문제라고 한다. 빈집 비율도 높고 집을 사려는 사람도 없다. 시내를 걸어도 폐건물이 굉장히 많고 투기 목적으로 짓다 말고 값이 오르길 기다리는 건물도 많아 전체적으로 도시가 정돈되지 못한 인상을 준다. 근교로 나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말라가 주변에는 예쁜 하얀 마을이 많은데 은퇴한 영국인이 주로 살거나 외국인들 별장인 집들이 상당수다. 길에도 거지가 많다. 정말 거지같은 사람들도 많지만 멀쩡한 몰골로 어설픈 재주를 시연한 뒤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도 모두 실업자 통계에 들어가 있겠지만 몇 년째 그러고 있다는 것을 보니 돈벌이가 얼추 살만큼은 되는 모양이다. 거지 뿐 아니라 이상한 사람들도 정말 많다. 허공을 보면서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 의문의 봉지를 양손에 들고 같은 길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동물 잠옷 입고 리어카 끌고 다니는 사람, 멍한 눈으로 자기 집에 가서 같이 자지 않겠냐고 묻는 사람 등등.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도시의 분위기는 침체되어있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다. 밤이 되어 은은한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골목골목엔 사람들과 그들의 왁자지껄한 수다로 가득하다. 온 동네 사람들이 죄다 쏟아져 나온 듯이 특별한 일이 없어도 거리는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삼삼오오 바나 노천카페에 앉아 한잔씩 걸치며 축구를 보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경기침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 때문에 삶이 꼭 즐겁지 않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온 동네가 소리 높여 말하는 듯하다.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함께 맛있는 밥을 먹으며 웃고 떠들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누구도 남이 나보다 얼마나 앞서있는지 신경 쓰며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몇 푼 더 버는 것보다 노곤한 오후 시간 달콤한 시에스따가 더 행복하기에 그들은 낮잠을 잔다. 무슨 직업을 갖더라도 남이 하는 일을 깎아내리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기에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하며 산다. 우리 학교에서 같이 교환학생 온 친구가 말라가에 막 도착해 집을 구하지 못하던 시절, 여행자 간 숙박 교류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의 집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그는 모로코 출신(말라가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모로코와 매우 가까워서 모로코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무척 많다)으로 말라가에서 보기 드문 석사 학위의 고학력자다. NGO 활동을 하다가 계약이 끝나서 지금은 레스토랑 웨이터 일을 하고 있지만 받는 돈은 비슷하다며 그다지 개의치 않아한다고 한다. 웨이터 하려고 석사 땄냐며 한마디씩 들을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혹자는 작은 꿈만 꿔서는 작은 사람 밖에 못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가 무슨 선택을 하던 존중하는 분위기, 자신이 한 선택을 만족하고 즐기는 분위기는 내가 이 도시에서 정말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메인 스트리트인 라리오스 거리 끝 쪽에는 언제나 복권을 파는 아저씨가 있다. 그가 사람들에게 복권 사길 권하며 장난스럽게 외치는 말을 들어보면 재미있다. “거기 예쁜 언니, 복권 사고 남자친구 바꿔! 모기지도 갚어!” 복권장수 말마따나 이 동네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애인과 모기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갚는데 오랜 세월이 걸리는 모기지는 가정의 재정 부담 제 1순위지만 혹시나 하고 복권을 사러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마저도 천하태평 느긋하다. 당첨?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이고.
말라가의 잠 안 이루는 밤
한낮의 여유로운 항구 도시는 해가 떨어지면 감춰둔 얼굴을 드러낸다. 운시바이 광장을 중심으로 구시가 전체에 하나의 거대한 놀자판이 형성된다. 아무리 봐도 낮보다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가끔 이상하게 조용한 날들도 있지만 대체로 평일 새벽 4시가 되어도 거리는 시끄럽고 사람이 많다. 일요일은 예외. 일하지도 않고 놀지도 않고 ‘진짜로’ 쉬는 날은 일요일이 유일하다. 그러나 일요일만 아니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일찍 자는 어린이가 착한 어린이라면 말라가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 날 선물 받긴 다 글렀다. 엄마 아빠 따라 나온 조그마한 아이들이 자정이 넘어가도록 까르르 웃으며 잘도 뛰논다.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도 젊은이들 가는 디스꼬떼까에서 술도 마시고 춤도 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아지트에서 늦도록 수다판을 벌인다. 그야말로 밤의 도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학생들이 있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살리르(salir, 밤에 놀러나가는 것)인 에라스무스들과 스페인 학생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는 체력이 좋아야한다. 아무리 밤을 새도 끄떡없는 그들의 체력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비록 대학교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앞에서 강의를 하건 말건 고등학생들 마냥 심각하게 떠들어댈망정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은 단 한명도 없다. 말라가 식으로 한 달을 연거푸 밤새며 놀다가 2년 동안 잠잠하던 위경련이 재발하는 바람에 이제는 후퇴 면죄부를 얻어 좀 편해졌지만 유럽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걸 다 버티고도 멀쩡한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이 노는 방식은 주로 이렇다. 따로 같이 요리해 먹자고 약속을 잡지 않는 이상 저녁 먹고 만나는 걸로 일단 정한다. 페이스북으로 이 친구, 저 친구 더 초대한다. 그런데 그 저녁이라는 시간이 애매하다. 스페인은 저녁을 늦게 먹기 때문에 9시나 10시부터 밥을 먹는다 치면 도대체 언제 만나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대강 자정까지는 저녁 시간이라고 보는 것 같다. 12시 이후부터는 술 마시는 시간이다. 클럽들은 12시에는 텅텅 비어있기 때문에 이때 가면 별 재미가 없다. 약속한 친구들과는 자정쯤에 만나 술을 마셔도 좋고 새벽 1시부터 만나 본격적으로 같이 놀면 적당하다. 약속 시간을 미리 구체적으로 정한 경우에도 피차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결국엔 새벽 1시 정도에 만나게 된다. 아무튼 저녁 먹고 만나자는 약속은 밥 먹고 조금 쉬고 치장하고 다음날 새벽에 만나자는 약속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 만나서 무엇을 하는가. 술 마시고 춤추는 것이 대부분이다. 말라가 대학 에라스무스들은 샴록이라는 곳이 아지트다. 엄청난 양의 모히또를 5유로에 팔고 스페인 노래보다는 영미 록음악을 많이 트는 작은 바다. 샴록 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건 귀가 멍멍하게 음악이 흘러나와 대화가 어렵지만 아무튼 술을 마시면서 고래고래 간신히 의사소통하다가 취기가 오르면 낮 동안 잠들어 있다 깨어난 수많은 디스꼬떼까들을 순회한다. 길거리에는 속칭 클럽 ‘삐끼’들이 무료 추삐또(칵테일 샷)를 미끼로 호객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삐끼들을 무시하지 않고 이야기를 경청하고 약도를 받아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간혹 아는 친구가 호객 아르바이트(유럽연합 회원국 국민들은 회원국 안에서는 별다른 절차 없이도 자유롭게 취직할 수 있다)를 하고 있으면 좀 더 잘 얻어 마실 수도 있다. 클럽들 앞에는 어깨 오빠들 두 명이서 정문을 지키고 있는데 여자들은 대체로 무료입장이라 노는 데에 큰돈이 들지 않는다. 각 클럽마다 틀어주는 음악이 다르기 때문에 분위기도 조금씩 다르다. 그래도 대체로 유행하는 노래들은 비슷한데 이게 여름부터 겨울까지 바뀌지를 않아 신기할 따름이다. 에라스무스를 타겟으로 한 파티가 매주 열리는 클럽도 있다. 인기 있는 곳은 피크시간대에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놀다가 밤이 새면 새벽부터 영업하는 피자가게나 케밥집에서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불경기가 와도 말라가에서는 디스꼬떼까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는 말라가 대학에서 교환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안내서에도 디스꼬떼까를 방문해 흥겨운 밤을 보내는 것을 권장하고 있으니 말 다했다.
밤과 클럽이 나왔는데 약초가 빠질 수는 없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람들이 마리화나 비슷한 것들을 많이 피운다. 하시시도 많이들 피운다고 한다. 변호사인 우리 집 집주인의 말에 의하면 그런 것을 파는 것은 불법이지만 개인이 피우는 것은 처벌하지 못한다고 한다. 정말이라면 조금 우스꽝스럽다. 누가 팔았으니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어울려 노는 친구 중에 동유럽 몰도바 출신 안드레이라는 아이가 있다. 삐쩍 마르고 머리가 파마라도 한 듯 구불구불한 히피 스타일의 주근깨 청년이다. 얘가 메르세드 광장에 앉아있으면 외모 때문인지 그렇게도 약초 장수들이 꼬여든다고 한다. 옆자리에 슬그머니 다가와 가만 앉아 있다가 조그만 목소리로 오퍼를 넣는단다. 이런 식으로 사고파는 것인가 보다. 물론 안드레이는 바른생활 청년이라 정중히 거절한다.
약초와 관련해 재미있던 일이 하나 있다. 한국 친구들, 스페인 친구들과 밤 외출을 했다가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스페인 아이 하나가 지나가던 후드를 뒤집어 쓴 여자애를 불러 세워 뭐라고 이야기를 하더니 둥그런 공 모양의 쿠키를 들고 온다. 그의 설명, 저 애는 ‘초록 모자’라는 별명의 유명한 소녀라고 한다. 집에서 마리화나 쿠키를 만들어 파는 아이이고 마리화나가 초록색이라서 빨간 모자를 변형한 초록 모자로 불린다. 그녀와 다음번에 접선하려면 일단 가명을 하나 지어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준다. 예를 들어 ‘요리사’로 지었다 치면 후에 나 요리사인데 뭐가 몇 개 필요하다고 문자를 보내면 된다. 그러면 초록 모자가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고 거기서 만나는 것이다. 쿠키를 입에 털어 넣는 친구에게 맛있냐고 물으니 고소한 초코쿠키 맛이 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약초를 은유적으로 초콜릿이라고 부르는 동네인 만큼 중의적인 대답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밀스런 장소들도 많다. 메르세드 광장 근처에는 겉에는 아무 간판도 없지만 새벽 세시 정도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아르헨티나 노래 공연을 하는 곳이 있다. 러시아 사람들이 운영하는 살짝 무서운 분위기의 바도 있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말라가의 비밀스런 밤의 모습은 많을 것이다. 낮의 느긋한 야자수가 무색한 또 다른 얼굴이다.
낮에 열심히 일했으니 밤에는 집에 가서 쉬어야지. 혹시라도 이런 나약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말라게뇨가 아니다. 낮에만 잠시 말라가에 들렀다 가는 여행자는 그야말로 수박의 겉만 핥다 가는 것이다. 수박의 속살은 아주 빨갛게 잘 익었는데 말이다.
소이 데 조선
스페인 영화가 괜히 야한 게 아니다. 스페인은 야하다. 말라가도 야하다. 집을 구하러 처음 이 도시에 도착해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올 때였다. 한창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승승장구 하고 있던 터라 국가대표팀 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굉장히 많았다. 내 앞에도 7번을 단 다비드 비야가 한명 있었는데 여자 친구 마중을 나온 모양이었다. 나랑 같이 버스에 탄 비야와 그 여친은 바로 내 앞자리에 서서 남들이 보건 말건(사실 나 말고는 보는 사람도 없었다) 격하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났나보다 하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버스가 시내로 들어가는 30분 내내 그러고 더듬고 있으니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길거리에서도 이런 광경은 흔하게 볼 수 있다. 텔레비전을 틀어도 애들도 볼 수 있는 프로에 진한 애정 신이 그냥 나온다. 방송을 들어봐도 상당히 수위가 높다. 우리 집 바로 앞에는 띠엔다 에로띠까(성인용품점)가 성업 중이다. 내가 보기엔 망측하기 그지없는 진열창을 사람들은 신발가게나 옷가게 구경하듯이 멈춰 서서 보다가 가곤 한다. 라리오스 거리에서 이어지는 주요 큰길인 알라메다 쁘린시빨에도 버젓이 띠엔다 에로띠까가 있는데 그 이름은 ‘노 에스 뻬까도(죄가 아니에요)’이다.
‘씨 에스 뻬까도(죄가 맞아요)’인 우리나라와는 너무 달라서 당황스런 일을 겪을 때마다 한국 유학생들끼리 가끔 우스개로 ‘소이 데 조선(나는 조선에서 왔어)’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정말로 ‘소이 데 조선’을 외치고 싶을 때는 스페인 아이들과 술을 마실 때이다. 평소 대화 주제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 야한 얘기인데 술자리에서는 오죽할까. 지금이야 얼굴이 두꺼워져서 같이 야한 농담도 하고 그러지만 섹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일종의 사회적 금기인 한국에서 평생 살아온 나로서는 상당한 문화 충격이었다. 언젠가는 스페인 아이들과 함께 술 게임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눈치게임, 공공칠빵 등 한국 게임을 하면서 재미있게 놀다가 스페인 게임을 하나 하기로 했다. 돌아가면서 ‘나는 한 번도 OOO 해 본 적 없다’라고 자신이 해본 적 없는 일을 말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 일을 해본 적이 있으면 술을 마시고 아니면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게임이었다. ‘나는 외국인과 자본 적 없다.’, ‘나는 차에서 해본 적 없다.’ 등등 몹시 스페인스러운 질문들이 지나가고 다시 차례가 된 알바가 주제문을 던졌다.
“이번엔 다 마시자. 나는 한 번도 마스터베이션 해본 적 없다.”
윽. 소이 데 조선. 모두들 야유하며 잔을 비우는데 한국 아이들만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장난 말고 마셔라.”
“아냐, 근데 진짜야. 정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그런 게 어디 있어. 거짓말쟁이들. 마시라니까.”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못 믿겠지만 한국에서는 성을 되게 쉬쉬하는 분위기라서 여자들은 정말 안 해본 사람도 많아.”
그러자 일장연설이 시작된다.
“내가 예전에 심리학을 좀 공부했는데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사람은 다 자위를 해. 남자들은 다 인정하고 여자들은 가끔 인정을 안 하지. 그래도 다들 한다는 걸 온 세상이 알고 있어. 섹스를 안 해봤을 수는 있어도 자위는 다 해봤어. 아마 너희 문화는 다들 안한다고 말해야 하는가본데 그래서 여기 같은 한국 사람들 있으니까 절대 해봤다고 말 못하는 거야. 내말이 틀려?”
“일리 있지만 정말로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니까?”
그러자 알바는 말로 설명하기 시작하고 연설을 마친 엑또르는 가방을 뒤적여 펜을 꺼내더니 탁자 위의 휴지에 여성 성기 그림을 그려가며 열심히 강의를 한다.
“여기를 이렇게 …(중략)… 꼭 집에 가서 해봐.”
“그런데 너 여자 꺼 본적 있어?” (얘는 게이다.)
“없어.”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당연히 아는 거지. 너네는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
이때 엑또르가 그려준 그림은 기념으로 잘 가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스페인의 공기는 훨씬 자유롭다. 한국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말세라고 혀를 끌끌 차시겠지만 스페인에서 몸은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성은 감춰야할 것이 아니다. 남의 몸이 어떻건 신경 쓰지도 않는다. 바다에 가는 여자들은 몸매나 나이에 상관없이 전부 비키니를 입는다.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친구에게 우리 한국 애들 사진은 지워주지 않겠냐고 부탁하자 이유를 묻기에 이렇게 답했다.
“여기서야 아무도 우리 아는 사람 없으니까 괜찮지만, 혹시라도 아는 사람들이 비키니 입은 사진 보면 진짜 민망한 거야. 비키니 입은 사진 올리는 사람들은 몸매 자신 있는 사람들 아니면 별로 없어. 여기는 가슴 안파인 옷이 없지만 한국에서는 가슴 조금만 파여도 어른들한테 한소리 듣는데 비키니는 오죽하겠냐. 그것도 그렇고 다들 무슨 자신감이냐고 그럴걸? 뚱뚱한 여자가 미니스커트 입는다고 택시기사가 폭행도 하는 마당에. 그래서 바다 가서도 옷 입고 물에 들어가는 여자들도 있어.”
“우와. 완전 다른 세상이네. 지울 테니까 걱정 마.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자기가 입고 싶으면 입는 거지. 그리고 남이야 몸매가 어떻건 무슨 상관이야.”
내 말이 그 말이다.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 하면서도 여성의 성욕에는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경우는 스페인에서 잘 찾아볼 수 없다. 처녀에 아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성경험 많은 여자를 천박한 여자 취급하지도 않는다. 여성이 양지에서 성에 대해 이야기해도 아무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섹스도 모두들 하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삶의 일부분으로 인정한다. 학교 화장실에는 콘돔 자판기가 있고 바에서도 콘돔을 판다. 청소년들의 성도 무작정 억누르지 않고 건전하게 유도하는 방향으로 교육한다. 중년, 노년의 성도 주책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동성애에 관해서도 훨씬 열려있다. 동성 커플들은 음지에서 죄라도 짓는 것처럼 살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게이나 레즈비언 커플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그들을 별종처럼 쳐다보는 사람들은 없다. 위에 등장한 엑또르는 엄마랑 굉장히 친해서 매일 매일 전화 통화를 한다. 엄마는 물론 아들이 게이인 것을 알고 있지만 전혀 슬퍼하시지 않는다. 남자친구를 데리고 고향에 가도 가족들 모두랑 즐겁게 잘 놀다온다. 그들에게 이 친구는 게이가 아니라 내 아들, 내 동생, 내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모범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성적이고 억압적인 프랑코 독재기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은 나라이기에 아직은 내가 알지 못하는 부작용도 많을 것이다. 다만 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분위기는 정말 새로운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점점 성에 대해 개방적이 되어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것이 걱정스러운 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성에서의 남녀평등이 앞서 이뤄져야 할 테고 건전한 성 인식 하에 자기 몸에 대한 선택권을 존중하는 사회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말라가에 온 교환학생들 모두에게 이곳은 특별한 곳이다. 내 플랫 메이트가 그랬듯 중앙 광장 한복판에서 탱고를 추고 박수를 받는 영화 같은 밤을 보낼 수도 있고 전에는 살아보지 못한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볼 수도 있다. 수많은 에라스무스들 모두에겐 자신만의 말라가가 있다. 나의 말라가는 한없이 친절하다가도 문득 내가 이방인임을 차갑게 상기시켜주기도 한다. 나의 말라가는 조금은 누추한, 그러나 눈이 부시는 도시다.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있고 사람들이 개똥을 안 치우는 도시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튀김 요리가 맛있는 도시다.
그러나 도시의 어떤 얼굴을 보건 내 청춘의 일부를 이곳에서 보내기로 한 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한겨울이지만 오늘도 내일도 말라가는 봄 날씨다. 따뜻한 바다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나는 또 하루의 소중한 날을 채워간다.
